홍보출판위원회 | [제주여성 여름호 한꼭지] VeganBegan 옷 해방 일지 - 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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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주여민회 작성일22-08-08 18:36 조회2,4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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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해방 일지
영우
FAST 혹은 PEST 패션
2021년, 그레타 툰베리가 이제부터 새 옷은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이 결코 놀랍지는 않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의 약 10%가 패션산업에서 비롯된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EU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에 대한 규제 의사를 밝혔다.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팔리지 않고 남은 많은 재고품의 폐기를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규정을 제안한 것이다.” “패스트 패션은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션이나 그 산업을 뜻한다.” 빠른 회전율은 그만큼 많은 폐기물을 생산한다. 재킷에 쓰인 면을 만드는 데 한 사람이 24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을 사용하고,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 나일론, 스판덱스는 연간 3억 4천 2백만 배럴의 석유를 사용한다. 폴리에스터와 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비스코스 레이온 섬유는 고대 산림이나 보호가 필요한 산림에서 채취된다. 제조 공정에서 원자재의 70%가 폐기물로 처분되며 이황화탄소가 배출된다. 세계 비스코스의 3분의 2는 중국 신장에서 생산되는데, 여기에는 강제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얽혀있다.
<하산 미나즈 쇼 : 이런 앵글> 中 <패스트 패션의 진실> 편 | 넷플릭스
미국의 배우 겸 코미디언인 하산 미나즈가 진행하는 정치, 문화, 환경 등 시사를 아우르는 블랙코미디 토크쇼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볼 수 있다. 하산 미나즈의 예리한 통찰력에서 발휘되는 풍자가 통쾌하지만, 그의 저격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패스트 패션의 진실> 편의 끝은 “각자 옷을 더 오래 입거나 중고 옷을 사자”로 마무리된다.
부럽지가 않아
다만 나는 음식보다 옷을 끊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과연 새 옷을 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2년 전에 옷에 관한 어떤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옷이 사고 싶으면 중고를 먼저 보고 결정하자’ ‘새 옷을 살 경우엔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디자인과 오래 입을 수 있는 튼튼한 재질을 사자’ ‘옷을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신중하게 고민하자….’ 매년 옷 정리를 할 때마다 갖가지 이유로 버릴 옷들이 생겼고 그 옷들을 볼 때마다 번뇌에 시달리는 것에 질려버렸다. 그런데 막상 중고로 옷을 샀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고 싶은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찾아 산 경우엔 오히려 더 손이 안 갔다. 그래서 좋은 품질의 가격대가 높은 옷을 샀는데, 나도 모르는 새 뭘 묻혀 이염이 생겼고 큰 상처로 남았다! 그냥 안 사버리면 되는 일인데 왜 그 쉬운 걸 못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삶의 기본 조건을 말할 때 언급하는 ‘의식주’에도 ‘의’가 ‘식’보다 앞선다. 반면, 영어권에서 의식주는 'food, clothing and shelter’로 음식이 먼저 온다. 한국이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만 보더라도 ‘의’가 먼저 온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한국 사회가 유독 유행에 민감한 이유는 집단에서 뒤처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이름하여 “상대적 박탈감”.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문득 학창 시절 유행했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학교 내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던 게 떠오른다. 이렇듯 옷은 실용적인 목적 외에 시대, 계층, 정체성, 소속감, 권력 등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사회적이다. 사람들은 옷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가늠한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 가격대가 높은 옷을 입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옷에 관심이 없는 사람, 나와 취향이 같은/다른 사람 등등.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에는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이런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있었다.
<낡은 것들의 힘> | 넷플릭스
넷플릭스 <낡은 것들의 힘>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제작한 젠지 코핸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미니시리즈다. 옷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주제별로 짚어낸 다큐멘터리로, 1화 <공동체> 편에는 나체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가까웠다. 나체로 생활하면서 “어떤 기대와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덕분에 “내면의 나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털어놓았다.
이 옷의 소재는 동물 착취입니다.
사실 옷에는 환경오염보다 더 심각한 동물 착취 문제가 남아있다. 대표적인 착취 소재로 언급되는 모피는 말 그대로 털이 붙어있는 가죽을 뜻하며, 밍크, 여우, 토끼 등에서 착취한다. 모피공장에서는 모피의 상품성을 훼손하지 않고 채취한다는 목적 아래 동물이 살아있는 채로 가죽을 벗긴다. 양에서 착취하는 울 또한 마찬가지다. 상품성을 위해 엉덩이 부분의 주름진 살을 도려낸다. 실크는 누에가 뽕잎을 먹은 후 고치를 만들어 나방으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채집해 만드는 소재이며, 앙고라는 토끼의 사지를 결박해 털을 강제로 뽑아 사용한다. 몇 년 전부터 겨울을 휩쓴 롱패딩만 보더라도 만들기 위해선 거위 10~15마리가 희생된다. 최근 명품 브랜드들에서 ‘fur-free’ 정책을 도입하며 모피 사용을 금지하고, 노스페이스와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재생 다운 제품을 출시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세계 각지에는 의류 목적으로 동물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감염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만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밍크코트처럼 비싼 의류는 애초에 살 수 없으니 나와는 먼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옷을 살 때 자세히 보면 (특히 겨울철에) 울, 앙고라, 동물성 가죽이 은근히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잠시만 고민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나는 옷은 사더라도 동물 착취 소재를 소비하는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애초에 옷 소비가 환경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무엇이 더 나은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소비하고 싶을 때가 있고, 그 소비를 꼭 해야겠다면 그다음 단계로 무엇을 살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연습이 필요하다. 옷도 옷이지만 신발을 살 때가 가장 고민이 많이 됐다. 그렇게 험하게 신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1년 이상을 버틴 신발이 없었다. 튼튼한 신발일수록 어린 양에서 착취하는 스웨이드나 돼지의 가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 VEJA라는 비건 브랜드를 알게 되어 덜 찝찝하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윤리적 소비라는 환상에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어쨌든 오래오래 신고 입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러닝화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우리들만의 문화 만들기
내게 옷은 욕망을 드러내고 싶은 장소이자 욕망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장소이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조금 방향을 바꿔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것 같다. 그니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전에 하우스 메이트가 있을 때 옷을 함께 입었었다. 서로 스타일이 달라서 내 옷이 질리면 하우스 메이트의 옷을 입었고, 필요한 옷이 서로에게 있어 자주 바꿔 입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불필요한 옷 소비가 줄었었다. 함께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친구들과 공유 옷장 혹은 플리마켓을 시도해 보는 방법도 제안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것을 제한하는 게 어렵다면 버릴 때 잘 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려면 입을 때 버릴 때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최대한 오래오래 아껴 입다 아름다운 가게, 한살림, 녹색가게 등에 기부하는 것을 실천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틈틈이 옷 정리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 기부하려고 모아둔 옷들이 아직도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